나의 이야기

[스크랩] 소녀가장

밥상 차리는 남자 2017. 5. 16. 09:30

 

친한 후배가 있습니다.

그 후배와의 인연이 벌써 30년이라니 살기도 많이 살았구나!’싶습니다.

 

대학생활을 공유했고, 나의 연애와 결혼생활, 그리고 다향이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면서

고모처럼 모든 걸 챙겨준 후배입니다.(실제로 다향이는 후배를 고모라고 부릅니다.)

별일이 없어도 한 달에 두어 번은 전화해서 잘 지내는지를 묻고, 때때로 영화를 보거나

맥주도 한 잔씩 마시던 후배의 연락이 뚝 끊겼습니다.

 

무슨 일이지? 아이들 시험기간인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후배는 아이들 시험기간이 제일 바쁘거든요. 그런데 밥 한 번 먹자던 후배의

얼굴을 본지 세 달이 넘어갔습니다. 장모님의 부고를 받고는 친구 편에 조의금만

보냈습니다.

 

그때도 많이 바쁜가? 이럴 아이가 아닌데생각만 했습니다. 상을 치르고, 장모님의

유품까지 정리한 뒤에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문자를 보내도 응답이

없습니다. 하루에 한두 통씩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남겨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몸이 좋지 않아서 식이요법을 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프기에 생으로 밥을 굶느냐고 물어도 후배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장모님 장례식장에 온 친구로부터 보름째 단식 중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택시로 출근해서

의자에 앉아 수업을 한대.’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래전에 받았던 후배의 명함이 생각나서

온 집안을 뒤져서 겨우 찾아냈습니다.

 

일터인 학원에는 나오겠지 생각했습니다. 자리에 없더라도 다른 영어선생님들과 통화를

하면 근황에 대해서 알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 오늘이

대선일이라서 쉬나?’생각하고 이튿날 다시 걸었습니다.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핸드폰도 학원전화도 받지 않으니 정말 큰일이 났구나!’ 싶은데 연락을 취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심한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30년 지기임에도 불구하고, 후배의 어머니나 여동생들의

집은 물론이고, 전화번호 하나도 모른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사실은 제 불찰이라기

보다는 대부분이 그렇지만 아픈 후배가 사라졌으니 혹시나 잘못되었으면 어떻게 하지?’

생각에 그런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정오경에 후배로부터 문자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그래 통화를 했더니 아파서 병원에

있다고 합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프냐고 물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고, 친구들이 자신을 보고 우는 것도 싫어서 아무한테도 전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나 전화를 하는지 견딜 수가 없어서 연락하게 됐다고.

 

침착하려 애쓰면서 농담처럼 물었습니다.

어디 있니? 삼성의료원? 서울아산병원?”

……? 안산병원에 있어요.”

 

오지 말라지만 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꼬박 한 달여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후배입니다. 그래 속으로 ! 얼굴도 보지 못하고 떠나갔으면 어떻게

하지?’걱정하고 있었거든요. 일산에서 아산병원으로 가면서 네 식구들이 네 삶을 모두

파먹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생활 때는 후배를 참 실없는 녀석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저 내년에 독일로 유학 갈

거예요.’해놓고, 몇 번이나 주저앉았습니다. 실제로 독일문화원과 미국문화원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일찌감치 영어과외 하는 걸 보면서 언어에 대한 열정과 능력을 보여주었기에

실제로 유학을 가는 줄 알았었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양쪽의

생활비를 후배가 대왔으며 넷이나 되는 여동생들의 학비와 용돈까지 챙겨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동생 넷의 대학등록금과 학비를 댄 것으로도 모자라는지 결혼까지 다 시키고,

조카들까지 챙기면서 정작 저는 변변하게 연애한 번 못하고 나이 오십이 돼서 덜컥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유방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후배를 보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볼이 움푹하게 파이고,

앙상하게 드러난 팔다리가 애처로웠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얼른 나아서 제주에 가자. 자리 물회에 한라산(소주) 한 잔 해야지

그러게요. 형이 제주에 그냥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서울생활 정리하고, 가서 요양도

좀 할 텐데.”

그러게. 연말께 치악산 아래로 옮길 생각이니까 그리로 오면 되지.”

치악산도 좋지요. 어디든 서울을 떠나서 이제는 나만 생각하면서 푹 쉬고 싶어요.

! 막걸리에 파전 먹고 싶다.”

그럼 난 커피장사 할 테니까 넌 주모해라.”

하하, 그럴까요?”

 

후배의 요청으로 종아리와 발을 주무르면서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그동안에도 많이

힘들어 했고, 토도 했습니다. 속으로 울음을 삼키면서 에그 이 녀석아. 가족들 챙기는

것도 좋지만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는 그만하고, 제주도로 내려와서 편안하게 살라고

그렇게 얘기할 때 좀 듣지. 원래 가난뱅이가 돈 벌어서 잘 살겠다고 악착같이 벌어서

살만하면 세상을 뜨는 법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건만…….’생각했습니다.

 

스르르 잠이 든 후배를 간병인에게 부탁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부터 항암치료를

받는다는데 몸도 가누지 못하는 체력으로 견뎌낼 수 있을까 염려도 되지만 얼른 쾌차해서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놀러 다니길 바랍니다. 소피아! 힘내라. 응원한다.


출처 : `밥상차리는 남자` 오성근
글쓴이 : 오성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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