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727

면회가는 날

오늘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봬러 갑니다. 5월 한 달은 매주 면회를 다녔지만 이 달부터는 보름에 한번 뵙는 걸로 바꾸었습니다. 4월에 올라오시고 낯선 병원이 라 만사를 젖혀두고 다녔지만 저도 제 일상생활을 해야 하니까요. 며칠 전부터 통화할 때마다 여쭈었습니다. "엄마 뭐 필요한 거 없어요?" "그러게나. 여기는 대전같지 않고, 밥이 잘 나와서 좋아." 대전이 아니라 청주라고 여러 번 말씀드려도 대전이라고 하니까 그러려니 생각합 니다. "엄마, 세 밤 자고 면화 갈 거예요. 그러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다른 할머니들이랑 나눠먹게 바나나 좀 사와, 옥수수랑." "엄마, 이제 두 밤 자면 면화걸 거니까 자꾸 언제 올 거냐고 재촉하지 말아요. 그리 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나의 이야기 2022.06.10

암보다 무서운 치매

4월 22일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서 막내동생이 어머니를 모셔왔습니다. 재작년 추석에 다녀가신 이후로 처음입니다. 코로나때문에 외출외박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에 온 어머니가 한참을 울었습니다. 병원에서 쫓겨나서 갈 데가 없다고, 밥 조금씩만 먹을 테니 여기에 있게 해달라는 말을 듣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막내동생의 거주지에서 나의 거주지 근처로 병원을 옮기려는 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아버지 의 제사를 핑계삼아서 자유를 만끽하도록 계획한 건데 어머니는 쫓겨났 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화장실에서 씻는데 다향이가 다가와서 속삭입니다. "할머니가 다급하게 다가와서 '쟤가 언제부터 여기 살았녜?' 그래서 '할 머니 무슨 소리야? 아빠랑 계속 같이 살았지.' 하니까 '네 아빠는 죽었잖 아'하셔...

나의 이야기 2022.05.01

제사상을 차리며

1년에 세 번 제사상을 차립니다. 설과 추석, 그리고 아버지의 기일이지요. 번잡하게 할 것 없이, 잘 먹지 않는 것은 빼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위주로 조촐하게 차리자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비 용이 듭니다. 오랫만에 녹두전을 부치고, 동그랑 땡(?)도 만들었습니다. 다향이가 어릴 때는 다향이랑 조카들을 데리고 놀았고 - 어머니가 "집에서 하는 것 알고 있으니 당신 앞에서는 음식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기도 했고, 좁은 집에서 아이들이 북적거리면 다칠 수도 있고, 음식 준비에 방해만 되니까 - 최근 몇 년은 주로 아내랑 아이가 음식준비를 했습니다. 나까지 낄 데가 마땅치 않아서 장보기와 탕 준비만 했었습니다. 내일 제사 를 앞두고 다향이가 전은 대구 전만 부치자고 합니다. 그래도 ..

나의 이야기 2022.04.21

"봄빛은 화사한데..."

"봄빛은 화사한데..." 세 밤이 지나면 열 번째 맞는 아버지의 기일입니다. 어머니를 모셔 와서 같이 제사를 지내고, 이튿날엔 추모공원에도 다녀오려고 합니다. 오랫동안 수고한 막내 동생의 짐을 덜어주려고 합니다. 일주일가량 모시면서 바람을 쐬어드리려고 하는데 치매가 많이 진행돼서 상황이 썩 좋지 않습니다. 지난 연말께 이제는 내가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대했던 어머니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왜소해졌습니다. 통화를 하면서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억들이 왜곡되고, 섞여서 엉뚱한 말도 자주 합니다. 새로운 기억이 입력되지 않을뿐더러 오래된 기억들도 점점 지워지는 것 같습니다. 요양병원에서 퇴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돌아가셔야지만 그곳을 벗어나시지요. ..

나의 이야기 2022.04.19

일상의 평화

어제아침 9시가 넘어서 안방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아빠!”하고 다향이가 두 손을 흔들면서 나옵니다. 드디어 자가 격리가 끝났습니다. 8일 만에 제대로 얼굴을 봅니다. “일주일동안 고생했다”하니까 “아빠도 수고했어.”합니다. 격리하는 동안 화장실이 딸린 안방을 다향이한테 내주었습니다. 안방에 갇혀서 밥을 먹고, 씻으면서 시간을 보냈지요. 용건이 있을 땐 마스크를 쓴 채로 방문을 살짝 열었서 나를 불렀습니다. 방안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오랜만에 둘이 아침을 먹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사용했던 것들을 일일이 소독약으로 닦아내고, 이불보며 베갯잇을 벗겨내서 빨았습니다. 옷이며 사용한 수건도 세탁을 하느라 세탁기를 두 번이나 돌렸습니다. 베란다와 거실 가득 빨래가 널렸습니다. 저녁에 만져보니 ..

나의 이야기 2022.03.25

진보주의 그만두기

진보주의 그만두기 평생을 진보주의자로 살아왔습니다. 이번 대선이 끝나고, 심상정과 정의당에 쏟아지는 비난을 보면서 이젠 진보주의를 그만두기로 합니다. 이재명의 낙선은 문재인과 민주당의 무능과 오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윤과 안의 합당으로 위기감을 느낀 진보성향 표 상당수가 이재명으로 넘어갔습니다. 큰 손해를 본건 정의당과 심상정인데 도리어 그들을 비난 합니다. 양당정치의 폐해를 뻔히 알면서도 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것입니 다. 1987년에 신상의 안위를 무릅쓰고, DJ와 YS의 후보단일화를 요구했습니 다. 둘이 후보로 나서서는 노태우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양김 의 출마는 노태우를 당선시켰고, 군부독재의 연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뒤로 거대양당의 후보에게 투표한 적이 없습니다. 비판적지지입 니다...

나의 이야기 2022.03.11

퍼뜩 정신이

미술교육을 받아본 게 언제일까? 아마도 중학생 때까지인 것 같습니다. 국영수가 중요하다고, 그걸 잘해야 진학을 한다면서 학교에서 미술과 음악시간을 없애버렸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생각하니 입시때문에 삶을 윤택하게 하는 커다란 즐거움을 학교가 교육의 이름으로 빼앗은 폭력 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그림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길을 쭉 갔어야 했는데 기회를 놓치고, 나의 길이 아닌 곳에서 오랫동안 헤맸 습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하자고 작년 여름에 이야기 글을 그림책 용 으로 바꾸고, 더미북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그림 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미술반에 등록을 했습 니다. 어제 저녁. 부푼 마음으로 첫 수업에 참석했는데..

나의 이야기 2022.03.03

겨울잠을 잊은

작년 봄에 화분갈이를 했습니다. 화분을 하나 더 장만해서 차 씨앗을 심어두었는데 (녹)차 싹 대신에 이렇듯 은행나무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은행이 떨어져 있는 걸 모르고 흙을 퍼온 것이겠지요. 한파주의보가 내려서 매일같이 영하 10도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푸른빛을 띠고 있습니다. 이 은행을 보면서 먹을 게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동물원의 동물들을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 랐습니다.

나의 이야기 2022.01.20

둥구나무의 추억

제주살이 8년 동안 3년을 지낸 표선면 하천리의 둥구나무. 부득이하게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곳을 떠난 게 상처여서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둥구나무의 풍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사진 몇 장을 추려보았습니다. 이제는 상처가 조금은 아문 것 같습니다.

나의 이야기 2021.12.15

입동, 호수공원

호수공원의 은행나무 -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은행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은행나무. 지난주에 절정이었을 텐데 조문을 다녀오느라 시기를 놓쳤습니다. 바사삭, 촤라락 어떤 것으로도자전거바퀴가 지날 때마다 낙엽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지만 정확히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버즘나무 잎처럼 큰 것과 단풍나무잎처럼 작은 것, 은행나무잎처럼 비교적 평평한 것의 차이는 알겠는데 그걸 듣고 적을 능력이 부족합니다. 가을이 저만치 오더니 이렇게 또 금방 가버립니다. 버즘나무의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알록달록한 단풍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면 한 폭의 수채화같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버즘나무를 수채화로 그려야지.'생각만 했는데 더 늦기 전에 그려야겠습니다. 찬란한 가을이 가고 춥고 어두운 겨울로 시작되는 입동입니다.

나의 이야기 202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