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화)엔 꽤 오랜시간 동안 데이트를 했습니다.
광화문에서 만나서 맛있는 점심식사도 하고, 청계천을 따라걸어서 을지로에
있는 단골 커피집에서 수다도 떨었지요. 나의 아름다운 친정 어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남자한테 친정어머니?
누구에게나 사는 건 벅찬 일입니다. 지치고 힘들 때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서
푹 쉬었다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요. 처음 그 생각이 든 건 다향이가 어릴
때의 일입니다. 과천의 아이엄마들이랑 육아모임을 할 때였는데 아이를 돌보면서
살림을 하는 게 그토록 버거울 줄을 몰랐지요.
육아모임의 아주머니들이 때때로 사라졌다가 나타나서 말합니다. 친정에 가서
손 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푹 쉬고 돌아왔다고 말입니다. 그때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 여자들한테는 친정이 있구나! 그럼
남자들은 지치고, 힘들 때 어디에 가서 기댈까?'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제주에 살 때 나와 아내 모두 힘들었습니다. 아내는 직장일이 고돼서 그랬고,
난 아내가 받은 스트레스의 투사 대상이 돼서 덩달아 힘이 들었지요. 그때 카페에
'내게도 친정이 있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응답해 준 분이
나비님으로 친정이 되어주셨습니다.
때때로 김치와 직접 채취해서 말린 나물, 그리고 직접 덖은 차도 보내줍니다.
그런 선물도 고맙지만 내게도 기댈 곳이 있다는 마음 든든함이 더욱 감사하지요.
서울에 다니러 온 그 친정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어제도 암투병 중인 후배의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아산병원에서 집이 가까운
의정부의료원으로 옮겼다고 해서 스마트폰의 힘을 빌렸습니다. 구파발까지
전철로 이동한 다음에 그곳에서 34번 버스를 타고 의정부로 출발했습니다.
아파트숲을 빠져나가자 들이 보이고, 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북한산은 언제봐도
참 근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30여 년 전에 친구들이랑 놀러도 다니고, MT를
가기도 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정류장을 알려주는 화면에서 흥국사라는 말을 듣고
보면서 2002년 쯤에 만났던 분이 떠올랐습니다.
다향이가 네 살 때의 일입니다. 무더위가 극심한 여름엔 주로 관악산계곡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소풍이라기보다는 집 뒤의 계곡물로 놀러다닌 것이지요.
아이들은 계곡물에 입술이 파랗게 변해서도 열심히 놀고, 어른들은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피할 때였습니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서 막걸리를 마시던 어른이 뜬금없이 내게 말했습니다.
지축이라는 곳에 가면 흥국사라는 절이 있는데 아직은 값이 비싸지 않으니까
절 입구 쪽에 땅을 조금 사두라고. 그러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때만 해도 지축이 어디인지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일산에 살고 있지 않다면
영원히 몰랐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때도 아내에게 말을 했지요. 아까 낮에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때도 아내는 대답이 없었지요. 하지만 그때 아내가 봤더라도
깡촌이었을 곳을 마음에 들어할 리가 없습니다. 물론 돈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런 곳에 사는 건 나의 취향이지 아내의 것이 아니니까요.
흥국사 버스정류장 바로 다음 정류장이 북한산입구입니다. 그것을 보고, '아! 그때
이곳에 땅을 사서 정착했으면 제주에 살 일도 없었을 테고, 다시 원주로 이동할까
하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궁금
해졌습니다. 그때 그분은 누구이고, 왜 내게 그런 말을 했을까?
의정부의료원으로 옮긴 후배는 지난주에 보았을 때보다 상태가 나아보였습니다.
3기라고는 해도 다른 암에 비해서 치유가 잘되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소중한 나의 몸아, 미안해 (0) | 2017.05.30 |
|---|---|
| [스크랩] 장모님을 뵙고 돌아오면서 (0) | 2017.05.29 |
| [스크랩] 자식과 부모 (0) | 2017.05.21 |
| [스크랩] 소녀가장 (0) | 2017.05.16 |
| [스크랩] 어버이날 아침에 (0) | 2017.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