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5일) 산청 출신의 총각과 부산 출신의 처녀가 진주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진주가 부산과 산청과 중간이라 그렇게 정했다더군요. 두어 달
전에 카톡으로 청첩장을 받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냥 축으금만 보내면
어떨까? 별의 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진주고속터미널에서도 또 버스를 타고
시외로 나가야 했으니까요.
2012년 제주에 살 때의 일입니다. 초등6년을 신나게 논 다향이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초등 6년이라고는 하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고,
날마다 시를 외우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며 책을 읽으면서 지냈습니다.
바다에서의 물놀이는 당연하 것이고, 제법 말도 탈 줄 알게 되었지만 다향이한테
또래집단을 만들어 줄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쳤지요.
세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몇 달을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전북 부안에 있는
대안학교인 '변상공동체'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달랑 하나 뿐인 딸을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때도 고민이 참 많았지요.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고, 시야에서 벗어나게 한 적도 없으며 금이야 옥이야 기른 딸을 멀리 보내놓고
자주 보지도 못한다니 왜 걱정이 안 되었겠습니까?
하지만 귀한 자식일수로록 남에게 맡기라는 옛 말도 있고, 또 홈스쿨링을 하면서
밑천이 다 드러난 마당에 별 뾰족한 수도 없었습니다. 변산공동체의 교장선생님에
대한 믿음으로 보내면서도 걱정이 많았지요. 혹시 다향이가 마음에 상처를 받는 건
아닐까 하고요. 그래 일단은 다향이가 변산공동체에서 한 달만 살아보고, 계속 지낼지,
집으로 돌아올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다향이의 입학식을 자켜본 다음에 "다향아, 이제 엄마아빠 (제주)집에 갈 테니까
잘 지내."했을 때 다향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나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에 한두 차례 동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손꼽아 기다리다가
약속한 한 달이 되는 날 변산공동체학교로 찾아갔습니다. 집에 가겠다고 하면 당연히
데리고 갈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조금만 더 지내 볼께"했지요. 그렇게 3년을 건강하게
보냈습니다.
그때 다향이가 믿고 의지한게 오늘 결혼한 신부 한수연양입니다. 14살인 다향이가
힘들고 외로울 때 19살이었던 수연이가 잘 토닥여주었다고 합니다. "언니가 없었으면
한달만 지내고 학교를 그만 두었을 거야."하고 다향이가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수연이가 고등부를 마치고, 졸업한 다음부터는 동생인 수진이를 또 2년 동안이나
의지하고 따랐고요.
그러니까 결코 쉽지 않은 변산공동체학교를 3년 동안 잘 견뎌낸 건 한수연·수진이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수연이의 결혼식을 모르는 체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온종일 버스 안에서 지낼 생각을 하니 답답해서 고민했던 것이고,
그것은 어제 저녁까지도 계속 되었습니다. 청첩장을 받지 받자마자 같이 가겠다던
다향이가 과중한 학교숙제때문에 포기한 것도 영향을 끼쳤고요.
오늘 아침 7시 20분에 집을 출발해서 진주고속터미널에 도착한 게 오후 1시. 2시의
결혼식 전에 변산공동체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밥을 먹었습니다. 역시나 축제처럼
꾸며진 결혼식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흥겹고, 재미있었습니다. 오후 4시 20분
고속버스를 타고 강남역에서 지하철로 꼬박 1시간을 달려서 집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9시 40분. 몸은 고단하지만 밀린 숙제를 끝낸 것처럼 마음은 홀가분합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제주에서 이어진 인연 (0) | 2017.03.14 |
|---|---|
| [스크랩] 사랑의 실체 (0) | 2017.03.09 |
| [스크랩] 새로운 목표가 필요해 (0) | 2017.02.22 |
| [스크랩] 기력이 쇠해 보이는 어머니 (0) | 2017.02.18 |
| [스크랩] 내 말이 우스운가? (0) | 2017.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