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을 시작한 이래 양복을 입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주로 청바지나 면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여름에는 늘 상 반바지차림으로 다녔지요.그나마도 대부분이
재활용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가게니 중고물품을 판매하는 곳에는
남자들의 옷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 살림을 시작했던 18년 전만 해도 살집이 별로 없어서 그럭저럭 옷가지를
사 입었는데 남은 밥과 반찬의 처리기 역할을 하다보니 걷잡을 수 없이 몸이
불어났습니다. 아내와 아이 모두 음식이 맛있을 땐 잘 먹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살림하는 입장에서 선뜻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때때로 '나는 잔반 처리기가 아니다.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과 건강, 인권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을 질끈 감고, 실패한 반찬을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쌀을 씻을 때 단 한 알도 버리지 않던 어머니, 그리고 먹지 못해서
영양실조에 걸린 외국의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뚱보가 되어버렸지요.
몸은 비대해지고, 구색을 맞춰입을 옷이 없으니 "아빠는 옷을 못 입어"라는 아이의
말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살이 찌니 옷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습니다.(요즘 말로는
핏이 살지 않습니다) 그래 살을 좀 뺀 다음에 옷을 사야지 생각한 것도 벌써 몇 달
째.
예전에는 살이 불어나면 일주일씩 단식을 하기도 했지만 나이를 먹으니 그조차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 내가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청바지를 사주기로 했습니다.
다향이가 골라주는 대로 이것저것 입어보지만 태가 나지 않습니다. 익숙한 일자형
바지가 아니라 종아리와 발목부분이 좁아지는, 착 달라붙어서 불편한 바지들입니다.
옆에 있던 아내도 말합니다.
"애들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옷을 입냐?"
그 말을 들은 다향이가 발끈합니다.
"왜 매스컴에 의해서 규제를 받으려고 그래? 그럼 살찐 사람들은 옷도 마음대로
입으면 안 돼?"
여러 번 입어 보고, 한참을 망설였지만 스판이 들어간 스키니즈식의 청바지는 계속
불편합니다. 그래 스판이 들어가지 않은 일자형 청바지를 어렵게 한 벌 구입했지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후배들이 개그맨 이경규씨한테 '형님은 아직도 속옷을 입어요?'
하고 한심하다는 듯이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경규씨가 말했지요.
'야! 그럼 평생을 입어 온 것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벗어버리느냐?'고.
그걸 세대차이라고 한다면 할 수 없지만 내 생각은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불과 7만 7천 원짜리 청바지 하나로 이렇듯 기분이 좋아지는데 너무 오랫동안 나를
돌보지 않았구나! 아무리 유행이라고 하지만 왜 거의 모든 청바지를 스판이 들어간
스키니스타일로 만들지? 이건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
다향이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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