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신촌, 그 설레임과 아쉬움.

밥상 차리는 남자 2010. 6. 22. 11:06

6월 18일. 제주공항에서 김포행 8시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비행이가 이륙한 직후의 다향이 말. "아빠, 나 열나는 것 같아."

손으로 이마를 짚어보니 확실하게 열이 난다.

'지난 밤에 이불을 차버리고 잣나? 그 전엔 아무런 이상징후가 없었는데...'

기침도 콜록콜록. 걱정이 밀려온다.

늘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하니 일정이 빡빡하다.

그런데 다향이가 감기에 걸리다니. 이 일을 어쩐담.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는 다향이. 아빠, 아빠 부르더니

생리가 시작됐다면서 생리대를 사오란다. 나, 이거 참.

공항내의 약국으로달려가 생리대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니 손짓으로 가르치면서

저만치 물러난다. 속으로 남자 약사이길 바랐는데 하필이면 여자 약사람...

그런데 이게 소형, 중형, 대형으로 나뉘어 잇어 선뜻 집을 수가 없다.

약사에게 물으니 중형이 가장 무난하다기에 그걸 집어들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일정은 하나.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행복한 결혼을 위한 의사소통 교육]

'비폭력 대화 NVC(Nnoviolent Communication)만 들으면 된다. 

그런데 김포공항에 도착한 것이 오전 9시 20분. 시간이 한참 남는다.

푹 자고 일어나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갔으면 좋았을 걸 싼 비행기표를

찾는 정희씨의 노력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다.

지난 밤에 이불을 차버리고 잠을 자서 감기에 걸린 게 아니라 이른

새벽공기에 그런 게 아닌가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엎지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듯이 이왕에 온 것이니 신촌구경을 하기로 한다.

연세대학교전철역에서 내려 학교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멀리 육교가 보이고, 그 아래로 연세대정문이 보인다. 다향이한테 얘기를 한다.

저 육교를 사이로 학생들과 전투경찰들이 대치하고 맞섰던 일들을,

그리고 엄마를 처음으로 만났던 독수리다방앞에 가서 서 보고, 처음 만난 날

함께 술을 마셨던, 도로 건너편의 주점인 아름나라앞에도 가 본다. 물론

옛 독수리다방자리엔 대형건물이 들어섰고, 아름나라의 상호도 바뀐지 옛날이다.

 

그 공간을 지나치는 수많은 젊은 청춘들...

다향이랑 학교안으로 들어간다. 이건 도서관건물이고 얘기하는데

"아빠 나도 이한열 알아."라는 다향이.

도서관앞의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걸개그림만 빼고는 모두 바뀌었다.

학생회관에 들어가서 시원한 거라도 한잔 마실까 했는데 대기업이 들어선 그곳의

결제방법도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돌아선다.

최루탄에 신음하며 고함을 지르던 회상에 잠겨 언더우드동산까지 걷는다.

그리고 돌아서 내려온다. 이곳이 SKY의 하나임을 얘기해주면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다향이가 좋아하는 민들레영토신촌점을 지나 '타는 목마름'이란 주점 이름때문에

주인이 경찰에 붙들려갔던 곳을 찾아보고, 詩공부를 하던 친구들과 소주잔깨나

들이킨 할머니집의 흔적도 더듬어 본다.

정희씨랑 밥을 먹고 차를 마신 카페, 그리고 옷이랑 구두를 사러 돌아다니던 곳.

이대앞의 빵집도 대기업의 프렌차이즈가 들어섰고, 결혼준비공부를 하던 카페

'가곡'의 자취도 찾을 길이 없다.

 

도시의 특성 - 소음, 매연, 하수구냄새 -에도 불구하고 좋은 게 하나 있다면

영화배우 뺨치는 멋쟁이아가씨들이 많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황순원선생의

소나기에 나오는 시골소년의 마음이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예쁜 얼굴(성형수술의 개가라는 얘기도 있지만)에 크고 늘씬한 키에 뽀얀피부는

훌륭한 구경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 엄마한테 이를 거야."란 다향이 말에 피식 웃고 만다.

"야, 예쁜 걸 예쁘다 말하고 구경하는 것도 잘못이냐?"

"알았어. 엄마한테 진짜 다 이를 거야." "......"

 

이대도 연대처럼 너른 공간들이 다 사라지고, 건물들만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그 건물들 사이로 너른 잔디와 나지막한 건물들이 올망졸망 서있는 제주대학교가

겹쳐진다. 너른 들에서 풀을 뜯는 소떼처럼 목가적인 느낌?

 

 

역시 대기업인 이화-SK텔레콤관에서 캐서린 한(한국 NVC대표)의 강의를 듣는다.

 

솔직하게 말하기        공감으로 듣기

 

관찰                        관찰

느낌                        느낌

욕구                        욕구

부탁                        부탁

 

 

솔직한 자기표현

 

1. 관찰 : 있는 그대로(평가와 구별하기)

   "내가                                   을 보거나, 들었을 때,"

 

2. 느낌 : 실제 느낌(생각과 구별하기)

   "나는                                   느낀다."

 

3. 필요, 욕구 : 느낌의 원인(수단/방법과 구별하기)

   "왜냐하면 나는                          이 필요/중요/원하기 때문에"

 

4. 부탁 : 구체적, 긍정적, 의문형으로(강요와 구별하기)

   연결부탁 

   "이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느끼니?"(생각하니?)

 

뭐 이런 식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라는 얘기인데 늘 이렇게 얘기하는 편인데도

대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얘기는 없다.

 

세 시간의 강의시간 동안 밖에서 책을 읽고, 행사장 언니들과 딱지치기 한 다향이.

안양 부모님댁으로 갈까 하다가 잦은 기침소리에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아현동

선배댁에서 여장을 푼다. 

 

일찍 자라고 해도 열과 기침때문에 힘들어 하는 다향이,

술이 된 상태에서도 물수건으로 다향이의 얼굴과 팔다리를 닦아주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수 있는지?'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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