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10일)오후에 대전에 사는 막내가 어머니를 모셔왔습니다. 이튿날 아침엔
모처럼만에 새벽밥을 지었습니다. 고혈압과 당뇨를 기본으로 갖고 계시는 어머니가
약을 드시기 때문입니다. 그래 다향이의 수료식 이후 처음으로 일찍 일어났습니다.
식사를 하고, 약을 드신 어머니가 말합니다.
“이따 다향이 일어나면 목욕 좀 시켜달라고 해야겠다.”
“……?”
할머니가 부탁하면 ‘네, 할머니’하고 움직이겠지만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욕조에 물을 받아서 오랜만에 어머니목욕을 시켜드렸습니다. 제주에서 찻집 둥구나무를
운영할 때 이후로는 처음이었지요. 몸이 불편하셔서 움직임이 거의 없음에도 때가 밀면서
“엄마, 국수장사 하셔야겠어요.”하니까 “에그!”하면서 때리는 시늉을 합니다.
어머니를 목욕시킬 때마다 어린 날이 생각납니다. 활활 달궈진 이발소의 난로 옆에 고무
다라에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사남매를 목욕시키시던 부모님! 겨울이면 코가 시리고,
여름에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덥던 단칸방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시절. 어머니를
씻기느라 땀이 배어나왔지만 “아이 개운하다.”는 말에 마음이 뿌듯해졌습니다.
어머니를 옮겼으면 하고 봐둔 요양시설에 함께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장점대신 단점만 꼽으시는 게 그동안 정든 기존의 시설을
떠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짐작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뿐입니다. 추운 날 때문인지,
자동차에 휠체어를 싣고 내리면서 어머니를 태우고 다니는 게 힘들까봐 그러는지 꼼짝도
않으려고 합니다.
어머니가 오시기 전에 텔레비전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몇 년 동안 보지 않던 것이었는데
너무 무료하실까봐 큰 마음먹고, 투자를 했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제 오후에야 개통이
되었습니다. “마트에라도 다녀올까요?” “옷 한 벌 사드릴 테니까 ‘아름다운 가게’에 잠깐
다녀오지요.”
이사 온지 이제 열흘이 막 지났지만 아름다운 가게에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물건을
기부하러 다녀왔는데 좋은 물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한 말이었지만 어머니는 도리질을
하고 맙니다. 다향이도 나도 꼼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어머니 곁에 앉아서 우두커니
앉아있거나 노트북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틀어놓고, 같이 봅니다.
“엄마. 병원에 계시면 늘 갇혀있는 거잖아요. 이렇게 외출하셨을 때 바람도 쐬고, 쇼핑도 하고,
또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녀요.”하고 기세 좋게 말했을 때 던져진 말.
“네 벌이가 신통해야지.”
“……?”
당신의 표현을 빌리면 평생 솥뚜껑운전을 하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가사와 돌봄 노동을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맞벌이를 하다가 다향이를 돌보려고 일을 그만두었을 때 서럽게
울던 어머니. 그 뒤부터는 아내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장인어른의 시각처럼 ‘무능력해서
놀고먹는 놈’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마다 ‘내가 공연히 돌봄과 가사노동에 뛰어든 게 아닐까?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는
대신 남들처럼 내가 일하는 게 옳았던 것일까?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부터 민주주의를
실천해보겠다고 나선 게 돈키호테처럼 우스꽝스러운 짓이었을까?’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당사자인 아내조차도 그런 시각을 드러내면서부터는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최근에야 병원의사의 전화를 받고, 어머니가 아침마다 인슐린주사를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민이 생겼습니다. ‘무얼 해드려야 좋아하실까?’에서 ‘무얼 해드려야
좋을까?’로 말입니다. 당뇨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고, 혈압은 두 번이나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건 기름지고 달달한 음식이고, 야채는 쳐다보지도 않으니까요.
마트에서 동태랑 오징어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을 본 다향이가 “아빠, 오징어볶음은 내가
할게.”하고 나섭니다. 그래 다향이가 오징어볶음을 담당하고, 동태찌개는 내가 끓였습니다.
어머니가 식사를 맛있게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다향이가 말합니다.
“아빠, 할머니가 집에 오신 뒤로 가장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아.”
앞으로 세 밤만 주무시면 다시 시설로 돌아가는 어머니와 좋은 시간을 갖고 싶은데 어쩌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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