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할머니의 반전(反轉)

밥상 차리는 남자 2017. 4. 14. 09:17

  

전철역 근처. 아파트의 단지와 단지사이에서 언제나 나물을 파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쭉 늘어놓은 나물비구니 뒤엔 우산이 있고 할머니는 그곳에 앉아서 나물을 다듬습니다.

그 우산이 햇빛과 비가림막역할을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때때로 할머니를 뵙습니다. 자그마한 키에 살짝 허리도

굽은 할머니가 나물 다듬는 걸 보고, ‘좀 팔아드려야 할 텐데생각했습니다. 나물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도, 예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도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마음과는 달리 나물을 팔아드릴 기회가 없었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 메고 다니는

가방이 늘 불룩하거나 현금이 없을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제 다향이의 부탁으로

책을 빌리러 화정도서관엘 다녀왔습니다. 빌려야 할 책이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달랑 책 한 권이 담긴 가방을 메고 오다가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맛있을

냉이, 달래, , 민들레 등이 보입니다. 얼른 지갑을 꺼내서 확인하니 달랑 사천 원이

들어있습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냉이랑 달래를 사고 싶었지만 이걸로는

어림없겠지생각되었습니다.


그냥 지나칠까?’하다가 여쭤보았습니다.


할머니 냉이는 얼마예요?”

삼천 원. 이거는 이천 원. 이것도 이천 원.”


할머니가 앞에 놓인 바구니의 나물들 가격을 쭉 알려줍니다. 나물을 좋아하니 세 종류

쯤 사고 싶지만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냉이만 한 바구니 달라고

했지요. 그 말을 들은 할머니가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라고 합니다.


할머니. 그러고 싶지만 지금 현금이 없어요.”

얼마 가지고 있는데?”

달랑 사천 원 밖에 없어요.”

그럼 이거 천 원에 가져가.”하면서 민들레바구니에 가리킵니다.

그럼 제가 민망하잖아요.”

아니야. 내가 농사짓는 거라 괜찮아.”


! 나는 달래를 사고 싶은데생각하면서도 할머니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지갑 안 동전의 공간을 만져보니 한 개가 잡힙니다. 오백 원짜리이기를 바랐으나

불행하게도 일백 원짜리입니다.


인심 쓰듯이 천 원에 가져가라던 할머니가 민들레의 절반만 비닐봉투 안에 담아줍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할머니의 애교정도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물을 가방에 담고 돌아서 걷는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에이. 오백 원짜리인 줄 알았는데 백 원짜리네. 백 원짜리야.”

?”


출처 : `밥상차리는 남자` 오성근
글쓴이 : 오성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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