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스크랩] 교래자연휴양림.

밥상 차리는 남자 2012. 11. 16. 15:02

앉아서 지낸 시간이 꽤 오래 되었습니다.

지난 10월부터 소설을 쓴다고 꼭 움직일 일이 아니면 책상머리에

붙어있었더니 전반적으로 몸상태가 나빠진 것 같습니다.

 

오늘(16일) 저녁부터는 돌풍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온다고 해서

아침일찍 교래자연휴양림에 다녀왔습니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왜 굳이 휴양림을 만들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연휴양림의 공기는 시내의 것은 물론이고,

둥구나무의 것과도 다릅니다.

 

서귀포자연휴양림도 제주시의 절물자연휴양림도 익숙하지만

교래자연휴양림을 찾은 건 처음입니다. 곶자왈 안의 때 묻지 않은

공기와 오래된 나무들, 그리고 그것을 타고 올라간 굵은 칡넝쿨들,

고사목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가 하면 길과 바위는 물론이고,

살아있는 나무들에까지 이끼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참 신비로운 곳이구나!' 생각하며 숲길을 걷는데 누런 소 두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습니다. 너른 들이나 풀밭에서 주로 방목하는

소에만 익숙해져 있었는데 해발 600m가 넘는 숲속의 거친 바위들

사이에서 나뭇잎을 뜯는 모습이 생경합니다.

 

숲속 오솔길이 좋습니다. 꼭 한 사람만이 지나갈 정도로 작은 길이

숲속에 나있습니다. 서귀포나 절물처럼 사람이 많지도 않고, 등산할

때처럼 굽이 길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올라갑니다. 조금

더 올라가다가 한 짐승을 만났습니다. 동글동글한 순한 눈을 가진

노루가 나를 빤히 바라봅니다.

 

나도 바라봅니다. 인간과 눈을 마주치고도 놀라거나 도망가지 않는

것도 신비롭습니다. 둥구나무의 뒷편 길을 산책할 때마다 마주치는

노루들은 경계하며 도망가기에 바쁜데 어슬렁거리면서 시야에서

멀어집니다.

 

오솔길 중간중간에 푸짐한(?) 소똥이 있습니다. 참 걸지게도 싸놨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옵니다. 하늘과 나무만 보고 걷다가는 물컹 밟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슬슬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하는데 다다다다닥......

소리가 납니다. '이건 또 뭐지?'생각하며 두리번거리다가 딱다구리를

발견했습니다. 썩은 나무둥치에서 요란스럽게 벌레를 잡아먹습니다.

 

한참을 올라가서 갈래 길이 나오는데 '숲길'과 '초지길'이란 간판이

보입니다. 숲길은 알겠는데 초지길이 뭐지? 의아함으로 영문표기를

확인하니 소리나는 대로 chogi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짐작으로 초원을

말하는가 보다 짐작을 했지만 이런 식의 영문표기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고, 돌계단이 많습니다. 호젓하고, 사색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아주 좋은 곳이지만 편안한 산책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절물휴양림이나 서귀포휴양림을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저처럼 무릎관절이

좋지 못한 분들에게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아무튼 기존의 두 휴양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인 만큼 아직 발걸음을 하지 못한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다향이가 방학해서 돌아오면 눈 내리는 날에 같이 다녀와야 겠습니다.

 

모처럼 두어 시간 동안 자유롭게 걸었습니다. 이 기운으로 마무리에 접어든

소설을 잘 완성해야 겠습니다. 소설 하나를 마치고 나면 소설 두 개를 더

쓸지, 아니면 지난 번에 써놓았던 장편동화부터 먼저 다듬을지 모르겠지만

글쓰기 작업을 꾸준히 할 계획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살림을 하느라

글쓰기에 굶주려 있었으니까요.

출처 : `밥상차리는 남자`의 둥구나무
글쓴이 : 오성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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