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겸.
다실에 앉아 향을 사르고, 찻물을 끓이네.
언제고 자네와 함께 차를 마시고 싶었는데
아무 말 없이 가 버리는가.
차는 무슨 차냐고, 소주나 한 잔 하자고
카랑카랑 말하며 너털웃음 터뜨리겠지만
오늘은 차를 마시게.
내 정성껏 차를 내릴 테니
아무 말 말고 차를 듬세. 오늘은 자네와 영영
이별하는 날이 아닌가.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이십하고도 오륙 년.
함께 웃고, 분노하고, 가슴 아팠던 감정들 다 가지고
가게. 아니 훌훌 털어버리고 가시게나.
자네가 원하는 세상에 가서, 그런 세상이 없다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서 온전히 사랑을 하게.
이별의 아픔없이 언제까지나 활짝 웃으시게.
근래에 자네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 십여 년 만에
스무 살 목소리로 제주에 놀러온다던 말이 내게
남은 마지막 말이 되었네 그려.
복겸.
향이 다 타고, 차도 다 되었으니 이제 슬슬
길 떠날 채비를 하게. 잘 가게 친구.
출처 : `밥상차리는 남자`의 둥구나무
글쓴이 : 오성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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