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제사상을 차리며

밥상 차리는 남자 2022. 4. 21. 18:31
1년에 세 번 제사상을 차립니다. 설과 추석, 그리고 아버지의 기일이지요.
번잡하게 할 것 없이, 잘 먹지 않는 것은 빼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위주로 조촐하게 차리자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비
용이 듭니다. 


오랫만에 녹두전을 부치고, 동그랑 땡(?)도 만들었습니다. 다향이가 어릴
때는 다향이랑 조카들을 데리고 놀았고 - 어머니가 "집에서 하는 것 알고
있으니 당신 앞에서는 음식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기도 했고, 좁은 집에서
아이들이 북적거리면 다칠 수도 있고, 음식 준비에 방해만 되니까 - 최근
몇 년은 주로 아내랑 아이가 음식준비를 했습니다.


나까지 낄 데가 마땅치 않아서 장보기와 탕 준비만 했었습니다. 내일 제사
를 앞두고 다향이가 전은 대구 전만 부치자고 합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좋아하시니까 동그랑땡도 부치자고 했더니 손이 많이 간다고 샐쭉해져서
자신은 대구전만 하겠다고 합니다. 


오랫만에 다시 메인셰프의 자리를 꿰찼습니다. 녹두를 불리고 적당한 식감
이 느껴지도록 갈아서 삶은 숙주와 고사리를 넣어서 부쳤습니다. 돼지고기
간 것에 당근이랑 시금치를 갈아넣어서 소를 만들고 모양을 잡아서 동그랑
땡도 부쳤습니다. 몇 시간 동안 기름냄새를 맡았더니 역시나 속이 울렁거립
니다.  수 년 동안 주도적으로 차례상을 차린 두 여자가 힘들었겠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견과류와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조카의 전은 따로 준비를 했습니다. 몸은
삐그덕거리지만 그래도 음식장만하는 게 좋습니다.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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