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과천민예총의 행사에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다향이가 네댓 살 때의 일이니까 벌써 십사오 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 내게
주어진 일이 할머니들한테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일이었습니다.
"할머니, 어떤 음식을 드시고 싶으세요?"
그때 (우리는)이가 시원치 않아서 딱딱한 걸 못 먹는다는 할머니들의 대답이
지금도 가슴 아픕니다. 그래 할머니들 십여 분을 두부요리 전문점으로 모시고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때때로 할머니들을 뵙습니다. 텔레비전에서도 신문에서도 뵙습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아니라 궂긴 소식들입니다. 아비인 박정희에 이어서 딸인 박근혜도
굴욕적인 대일협상을 맺었습니다. 피해 당사자와 대부분의 국민들이 반대하고,
젊은 학생들은 엄동설한에 노숙을 하면서 소녀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해
다향이는 학교에서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 다향이랑 영화 귀향을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느라 정신없이 바쁜 아이한테 말을 꺼내도 될까 염려되었습니다.
십년이 넘도록 둘이 영화관을 들락날락했습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영화관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해보겠다는 작년부터는 '아빠, 바빠서 안
돼'라는 말을 훨씬 많이 듣고 있습니다. 어제도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선뜩 응하면서 '아빠 개봉관을 잡기가 어려웠는데 관람객이 늘면서
상영관이 늘어나고 있대. 이제는 롯데시네마에서도 상영한대'하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 흘리면서 분노했습니다. 어린 소녀들을 능욕하는 일본군은
물론이고, 할머니들을 오랫동안 외면하다가 덜컥 도장을 찍어준 정부와 대통령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지배자로서 군림해온 남자들의 잘못으로 희
생된 할머니들께 사과하고, 잘 모시지는 못할 망정 또다시 짓밟는 모습에 분노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어찌 할머니들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다향이한테 화냥년(환향녀)의 어원에 대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때의 환향녀나
영화 귀향의 할머니들이나 똑같은 피해자인데 그것을 부끄러워 하고, 숨겨야 했던
기막힌 현실, 그것을 방조하고 나몰라라 했던 비열하고 부끄러운 나라에 대해서.
박근혜와 아베를 비롯한 군국주의자와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재빨리 변신해서
이 나라의 지도층 노릇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화를 보도록 하고, 리뷰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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